#. 마트에 들어서니 로봇이 알아보고 인사한다. "어제 두부를 사신 손님이군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로봇에 고추장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로봇 화면에 고추장 상품이 뜬다. 상품을 고른 후 로봇에 손바닥을 대니 결제가 완료됐다. 핸드페이(정맥 결제 시스템) 시스템에 신용카드가 입력돼 번거롭게 카드를 꺼낼 필요가 없다.

#. 슈퍼마켓 점주 A씨는 라면 판매가 줄어들어 고민하던 중 고객 쇼핑 형태를 분석하는 영상 인식 솔루션 'ARA'를 도입했다. 고객이 진열대에서 어떤 상품을 집었는지, 어느 위치 상품을 봤는지 분석해주는 기술이다. 분석 결과 고객은 외국 라면에 관심이 많았다. A씨는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다양한 외국 라면을 전시해 매출 증가를 이끌어냈다.

미래에나 가능할 법한 풍경이지만 현재 유통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다. 유통산업이 정보기술(IT)과 만나 한 단계 도약하고 있다. 백화점, 쇼핑, 마트 등 여러 분야에서 유통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롯데그룹도 유통 인공지능(AI) 혁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또한 유통 전 단계인 원재료 확보부터 제조, 운송까지 전 생산 라인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을 진행해 디지털로 결합되는 '원롯데 에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롯데그룹 계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롯데정보통신은 13일 정보화 전략 세미나를 열고 제조·물류·유통에 걸친 기술 83종을 공개했다. 마용득 롯데정보통신 대표이사는 "롯데그룹은 DT '원롯데 에코시스템'을 이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롯데정보통신은 80여 개 솔루션을 개발해 그룹사와 국내외 다른 기업에 기술을 제공해 DT 혁신 선도 기업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행사는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최신 기술을 공유하는 자리로, 롯데그룹의 디지털 전략을 가늠할 수 있다. 특히 올해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사진)이 일본에서 3주 만에 귀국한 후 첫 계열사 방문 일정으로 이곳에 들러 주목을 받았다. 신 회장은 이날 오전 경영전략회의에 참석한 후 오후에 이곳을 찾아 전시장을 둘러봤다.

IT업계 관계자는 "신 회장은 이전부터 DT에 대한 관심이 높아 모든 업종에서 빨리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경영 환경을 마련하고 시행하라고 평소에 강조해 왔다. 그룹사 IT 수준이 어느 정도까지 왔는지, 챙기기 위해 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롯데정보통신은 제조부터 운송, 유통까지 전 과정을 스마트화할 수 있는 솔루션을 공개했다. 제조 공정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품 개발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술이 많았다. 스케줄링 솔루션은 제조 공정 시간, 동선 등을 분석해 최적화하는 기술이다. 이송 로봇은 바닥에 내장된 센서를 인식하고 정해진 경로를 자동으로 다니며 제품을 운반해 효율성을 높인다. 롯데정보통신 관계자는 "복사기 등을 만드는 안산 반월공단 내 롯데캐논 공장에 도입해 원가 4억원가량을 절감했다"고 설명했다. 미세 공정 등 어려운 공정을 사람과 함께하는 '협업 로봇'은 천안 롯데 푸드 공장에 도입할 계획이다.

운송은 디지털 기술을 만나 안전하고 신속하게 변한다. 블록체인 축산물 이력관리 시스템으로는 소고기 제품을 개당 단위로 축산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 롯데정보통신 관계자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해 조작이 불가능하다. 기술이 완성돼 마트나 백화점 도입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가장 주목받은 분야는 유통이다. 백화점 쇼핑 슈퍼마켓 온라인 쇼핑몰 등 여러 유통사업을 전개하는 롯데가 신속하게 디지털 혁신을 이루기 위해 가장 신경 쓰는 분야이기도 하다. 지난달 롯데그룹은 50조원 투자 계획을 밝혔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이 온라인 사업과 유통·식품에 AI 도입 등을 비롯한 디지털 전환에 대한 투자다.

롯데정보통신이 독자 개발한 '영상 인식 플랫폼 ARA'는 고객의 동선, 상품별 쇼핑 시간, 행동을 분석해 마케팅을 돕는 솔루션이다. 고객이 어떤 상품을 집었는지, 상품 겉면의 어떤 부분을 봤는지 등을 알려줘 소비자 정보를 판매자에게 전달한다. '외국인 쇼핑 도우미 AI'는 상품을 휴대폰으로 촬영하면 자국 언어로 번역해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기술이다. 가격과 제품명뿐만 아니라 맛과 특징도 설명해준다. 롯데정보통신 관계자는 "외국인 쇼핑 도우미와 ARA는 개발을 완료했다. 현재 백화점 등 여러 유통 분야에 적용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알리도(ALIDO)'는 온라인 쇼핑몰에 방문한 고객 행동 패턴을 분석해 쇼핑 편의를 도와주는 상품 추천 솔루션이다. 머신러닝 기술로 개인에게 최적화된 상품을 추천한다. 롯데정보통신은 "솔루션 도입 후 클릭 횟수가 6%가량 늘었다"고 했다.

AI 로봇도 관심을 모았다. 고객 얼굴을 인식하고 평소 선호하는 메뉴를 추천해준다. 핸드페이 등 결제까지 지원한다. 현재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있는 세븐일레븐 시그니처 등 일부 매장에 적용됐는데 롯데그룹사 패스트 푸드, 편의점 등에 확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선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