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강국(强國)이 되려면 기업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정부가 판을 깔아줘야 한다."

인구 560만명인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최근 글로벌 핀테크 스타트업의 허브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정보통신기술(ICT)로 무장한 핀테크 스타트업을 유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결과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다. 전 세계 대형 금융기관을 유치한 저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입 웨이 키엣 주한 싱가포르 대사는 최근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싱가포르 모토는 국가를 '살아 있는 실험실(a living laboratory)'로 변신시키는 것"이라며 "첨단 기술에 맞춰 정부는 법·제도를 끊임없이 손질해야 하는데 한국과 싱가포르가 이런 판을 짜는 데 협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스타트업을 위해 다양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핀테크 분야 '규제 샌드박스(sand box)'다. 규제 샌드박스가 적용된 스타트업은 일정 기간 인허가와 지배구조, 관리·감독 등 기존 금융권에서 적용되는 규제에서 벗어나 혁신 기술을 실험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2016년 영국에 이어 아시아 최초로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했고, 2017년부터 혜택을 본 스타트업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 2019년에 처음 등장할 전망이다.

입 웨이 키엣 대사는 정부의 오픈 마인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싱가포르 공무원들은 스타트업들이 난생처음 들어본 기술과 아이디어를 제시해 현재 법·제도에 맞지 않더라도 '안 된다'는 말을 하는 법이 거의 없다"며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해법을 찾으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 스타트업들이 싱가포르 정부와 소통할 수 있도록 모든 부서의 업무 내용과 담당자 연락처를 상세하게 공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 결과 싱가포르엔 현재 핀테크 스타트업 450여 개가 둥지를 틀었다. 글로벌 100대 혁신 핀테크 기업도 싱가포르는 작년 2개에서 올해 6개로 3배 늘었다. 한국은 2개에 그쳤다.

입 웨이 키엣 대사는 인터뷰 도중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계좌번호를 몰라도 휴대폰이나 신분증 번호만으로 국내외 송금이 가능하다며 전자결제를 직접 시연했다. 그는 "싱가포르에 상당한 수준의 블록체인 기술을 보유한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늘면서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싱가포르가 협력할 수 있는 분야도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싱가포르는 국가를 통째로 '스마트화'하겠다는 '스마트네이션 이니셔티브(Smart Nation Initiative)'를 발표했다. 입 웨이 키엣 대사는 "단순히 정보기술(IT) 인프라스트럭처를 확충하는 것을 넘어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최첨단 기술을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국가 전체에 적용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와 관련해 △국가전략사업 △도시 생활 △교통 △건강 △정부 디지털서비스 △스타트업 등 6개 핵심 분야를 설정했다. 그는 "스마트 시티 분야에서 앞서 있는 한국과 싱가포르가 규제 프레임워크를 함께 만들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스마트시티는 데이터 등의 자유로운 이동과 연결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를 예로 들었다. 그는 "싱가포르는 외국 기업들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자율주행차 운행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나 기업과도 같이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2016년 IT복합지구 '원노스(One North)'에서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 택시 시범 운행을 시작했고, 내년 봄엔 싱가포르국립대에서 자율주행 버스를 시험하는 등 한국 못지않게 이 분야에 관심이 많다. 전자상거래 역시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전역으로 시장을 넓히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이젠 플랫폼 하나만으로는 부족하고 효율적인 로지스틱과 국가 간 결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두 나라가 협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아세안 의장국을 맡은 싱가포르 주도로 '아세안 스마트시티 네트워크'가 출범했다"며 "아세안 주요 도시의 디지털 인프라스트럭처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인데 스마트시티 기술과 경험이 많은 한국과 싱가포르가 활약할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 웨이 키엣 대사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6·12 미·북 정상회담 준비로 바쁜 한 해를 보냈다고 한다. 그는 "싱가포르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실현에 기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2018년은 뜻깊은 한 해였다"고 말했다. 2015년 4월 주한 싱가포르대사로 부임한 입 웨이 키엣 대사는 "관례라면 올해 귀국해야 했는데 일복이 터진 덕분에 한국에 좀 더 머물게 됐다"며 웃었다. 그는 내년 여름에 싱가포르로 돌아간다.

[임영신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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