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이 모씨는 최근 10년 만에 모교를 방문했다. 이씨는 "대학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제출할 일이 생겼는데, 본인이 직접 와야 발급받을 수 있다고 해서 다녀왔다"면서 "민원 24 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해도 주민센터 등에서 방문 수령만 가능하다고 하더라. 요즘 같은 시대에 아직도 이렇게 오프라인으로 서류를 받아야 하다니 너무 번거로웠다"고 말했다.

본인이 신분증을 지참하고 방문해서 직접 발급받아야 하는 각종 '증명 서류'를 스마트폰 앱으로 간편하게 제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개인은 본인 데이터를 직접 관리하면서 필요할 때는 언제든 클릭 한 번으로 서류를 보낼 수 있고, 기관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위변조 여부를 즉시 판별할 수 있어 유용한 서비스다. 특히 공인인증서가 전면 폐지될 예정이고 이를 대체할 '포스트 공인인증서'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나온 모바일 전자증명 서비스여서 주목된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삼성전자,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코스콤과 사업 협약을 맺고 블록체인 네트워크 기반의 '모바일 전자증명 사업'을 공동 서비스한다고 14일 밝혔다. 현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단계로, 오는 10월부터 대학 졸업·성적증명서 발급과 스타트업 비상장주식 거래 시 상대방 확인용으로 시범 서비스를 실시한다. 지금까지는 스타트업 비상장주식을 거래하고 싶어도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모바일 전자증명 서비스가 시행되면 부동산 거래처럼 간편하게 주식 보유 여부를 증명할 수 있고, 매수인과 매도인 신원을 확인하는 것도 훨씬 편리해질 전망이다.

참여 기업들은 늦어도 내년 초부터 정식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빠른 서비스 확산을 위해 SK, LG, KT 그룹사 신입·경력 채용 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번 서비스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보안성을 높이고 위변조를 사전에 차단한 것이 특징이다. 컨소시엄 관계자는 "비유하자면 평소에는 여러 개의 물품보관함(블록체인 노드)에 각각의 서류를 넣어두고 있다가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기관이 생기면 그 물품보관함 열쇠만 줘서 잠시 열어보게 하는 셈"이라며 "위변조가 불가능한 분산원장(블록체인)으로 개인 신원을 확인·증명하고, 이용자 스스로 개인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탈중앙 식별자(DID) 기반 '자기주권 신원지갑'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통신3사를 비롯해 국내 대표 기업과 기관들이 모인 만큼 '모바일 전자증명' 생태계 확장에도 적극 나선다. 컨소시엄은 내년부터 은행·증권·보험사에 제출해야 하는 금융 관련 증명서류와 병원에서 발급하는 기록 등으로 확산한다는 게 목표다. 모바일 앱 하나로 여러 회사의 멤버십 카드를 모아서 사용하는 것처럼 참여 기업이 늘어날수록 다양한 본인 증명서를 스마트폰에 저장해 가지고 다닐 수 있다. 사원증과 학생증을 들고 다닐 필요 없이 모바일 신분증으로 대체하는 방안도 모색한다.

컨소시엄 관계자는 "향후 각 기업 채용 시스템, 사원 증명 기반 모바일 출입통제 서비스, 통신 및 금융권의 전자서명 및 비대면 사용자 인증, 골프장·리조트 회원권, 영화관이나 놀이공원의 학생 할인서비스, 공증·내용증명, 온라인 간편로그인 서비스 등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사업은 갈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데이터 소유권을 개인에게 돌려주는 첫 단추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세계는 지금 '데이터 주권'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각종 증명서류들은 개인의 데이터임에도 각각의 기관·기업 서버에 저장돼 있을 뿐, 본인이 데이터를 활용하려 해도 발급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구조다. 다가올 '데이터 경제' 시대에는 누가 데이터를 '판매'할지가 중요해지기 때문에 개인이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안 증명 서비스가 각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참여 기업들은 그동안 쌓아온 블록체인 역량을 적극 접목할 계획이다. SK텔레콤은 블록체인 플랫폼 기술 역량과 블록체인 기반 모바일 출입통제 시범 적용 경험을 활용하고, KT는 '서비스형 블록체인'(BaaS), 지역화폐 사업에서 축적한 역량과 5G 기가스텔스 등 블록체인 기술에 DID를 접목할 예정이다.

LG유플러스는 제조·손해보험·통신사 간 블록체인 기반 단말 분실파손보험 서비스를 구축한 경험과 소프트뱅크와 협업한 블록체인 서비스 구축 노하우를 발휘한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스마트폰 등에 적용한 보안프로그램 녹스(Knox) 기반 블록체인 기술로 신원 정보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금융기관들은 이들과 협업해 업계에서 가장 높은 보안 수준의 인증 서비스를 제공한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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