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 방콕은 최근 한국만큼 배달음식 서비스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맞벌이 부부 증가와 도심 과밀화에 따른 심각한 교통체증 등 경제·사회 변화가 배달 서비스 수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랩푸드' '라인맨' '겟' 등 동남아시아에서 자체적으로 성장한 배달 중개 애플리케이션(앱) 회사들은 대부분 차량 호출(카헤일링) 서비스를 하던 기업이다. 이들은 서비스 영역을 확장해 음식 배달에까지 나서며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독일계 '딜리버리 히어로(DH)'가 태국에서 운영하는 '푸드판다'는 현지 기반의 카헤일링 사업이 없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DH가 시장 1위 업체인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지분을 최근 인수하면서 외국계가 국내 배달 앱 시장을 사실상 100% 독점하게 된 한국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배달의민족 측은 DH 우산 밑에서 아시아 시장으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아시아 배달 앱 시장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그랩, 고젝 등 모빌리티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배달 영역까지 진출해 거대한 빅데이터를 쌓고 이를 인공지능(AI)을 통해 분석해 남들이 쉽게 넘보지 못할 자생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서비스 간 국경이 없어지는 4차 산업혁명 경쟁 구도에서 데이터 규제와 혁신을 가로막는 각종 장벽에 가로막힌 한국 기업들이 매우 취약하다는 방증이다.

DH와 배달의민족이 공동 전선을 구축하게 될 동남아 시장에서는 이미 그랩과 고젝이 주요 배달 서비스 기업으로 성장했다. 모두 이륜차, 택시, 일반 차량 등을 호출해주는 모빌리티 서비스를 하던 기업인데, 새로운 먹거리로 음식 배달까지 나섰다.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태국 등 동남아 각국에서 배달을 위한 교통 인프라스트럭처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성장한 데다 모바일 결제·택배·자동차 수리 등 각종 생활 서비스까지 제공하면서 배달 서비스 사업자로서 경쟁력을 갖췄다.

이용자를 상대로 음식 배달 앱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DH와 비교하면, 여러 서비스를 결합할 수 있는 데다 다양한 경로로 이용자 확보도 용이해 경쟁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랩은 간편결제뿐 아니라 호텔 예약, 동영상 스트리밍, 건강 상담, 여행자보험과 재산관리 상품 등 금융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중소기업에 소액 대출을 제공하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최근에는 마스터카드와 협력해 아시아 최초로 카드 번호 없는 결제카드를 선보였다.

동남아 시장에서 슈퍼 앱이 연거푸 나오는 것은 현지 정부와 협력해 빠르게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높은 빈부 격차, 다민족·다문화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현지 정부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고젝은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정부 다음으로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각종 규제와 기존 택시 업계 반발 탓에 우버와 동남아 모빌리티 기업들처럼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충분한 차량을 확보하지 못해 교통 최적화·효율화를 위한 AI 개발부터 쉽지 않다. 배달이나 다른 영역으로 확장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도 국정감사 철마다 단골손님으로 불려가 광고비 등을 놓고 질책을 받는 등 곤욕을 치러왔다. 국내 모빌리티서비스 타다는 일명 '타다금지법'으로 불리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를 일사천리로 통과하면서 법사위와 본회의 통과 절차만 남겨둔 위기 상태다. 이재웅 쏘카 대표는 1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 페스티벌' 기조강연에서 "혁신 여부는 시장과 이용자가 판단하는 것이다. 시작점에서는 미약해 보여도 데이터가 쌓이고 AI가 고도화되기 시작하면 큰 변화를 체감하게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 대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무조건 혁신을 막는 게 아니라 미래 기반으로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하게 성장할 수 있을지를 염두에 둔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철 기자 / 오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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